오직서울책보고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인스타그램 업로드_2022년 11월 4일
서울책보고에만 있는 희귀하고 놀랍고 의미 있는 혹은 재미있는 책을 소개하는
오직서울책보고 벌써 11월에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지난 9월에 이어 두 달 만에, 우리나라의 대표 시인선 중 하나의 1권을 가져왔습니다.📚
지난 번에 창비시선 1권인 신경림 시인의 농무 를 봤잖아요?
오늘은 문학과지성시인선 1권인 황동규 시인의《나는바퀴를보면굴리고싶어진다》를 가져왔어요.🧐
지금도 많은 분들이 애정하는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1권부터 지금과 같은 형식의 디자인이었습니다.
뭔지 아시죠? 두꺼운 테두리 안에 긴 사각형이 있고, 그 안에 시인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는, 오로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만의 디자인.
1권부터 2022년 10월, 574권이 나온 지금까지 같은 디자인으로 시집이 나오고 있다는 점은, 정말 놀랍습니다.✨
통권 500권을 돌파했었던 2017년에는 기념시집 내가그대를불렀기때문에 라는 기념시집을 내기도 했는데요.
이 시집 발문에서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시가 우리를 직접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시가 있음으로 해서 누군가의 삶이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만은 포기되지 않으면 좋겠다."
며 시가 지닌 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그 믿음의 시작점은 바로 황동규 시인의 이 시집 《나는바퀴를보면굴리고싶어진다》였습니다.🚲
시집의 표제작인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한 번 같이 읽어볼까요?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아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 떼 지저귀던 앞뒷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 있는 귤,
응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 떨어지기 전에 한 번 날으는 길 위로.
동그란 모든 것들을 굴리고 싶어한 시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 시집은 1978년에 초판이 나왔는데요. 서울책보고가 가지고 있는 시집은 1992년에 발행한 30쇄입니다.
문득, 지금도 여전히 판매하고 있는 이 시집의 이 시는 지금의 문법에 맞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지네요.
지금 기준에서는 틀린(!) 표현인 '리어카아' 그리고 '날으는'은 시의 고유성을 위해 그대로 지켜지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1978년에 나온 이 시집에서 1970년대의 감수성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 감수성에 대해서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직접 이 시집을 손에 잡고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다만, 시인은 자서에서 "이 시집을 뚫고 흐르는 모티프가 있다면 정한과 부끄러움일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부끄러움에서 나는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했고 정열에서 살아가는 일의 살 만함을 깨닫곤 했다...
부끄러움과 정열이 더 큰 곳으로 확산되기를 빌 뿐이다."라고 썼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어요.🌸
부끄러워하는 것, 정열을 가지는 것이 왠지 모르게 낯설어진 시대에 어쩌면 이 오래된 시집만이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 같아서요.
아, 눈의 이미지가 많으니, 곧 다가올 겨울을 기대하며 이 시집을 읽어보아도 좋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