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Vol. 39

SPECIAL

[밑줄의 일부] 전주국제영화제와의 동행, 영화 <새벽의 모든>(미야케 쇼, 2024)

이지혜.jpg

  

밑줄의 일부
전주국제영화제와의 동행, 영화<새벽의 모든>(미야케 쇼, 2024)
 

이지혜

영화평론가, 문화평론가
 
 

Emotion Icon<밑줄의 일부>는 영화와 드라마, 문화현상의 인문학적 고찰에 대한 에세이가 담긴 코너입니다.

 

 

 

 

*

 

 

 

서울책보고_동행_사진01.jpg

▶ 전주국제영화제 현장 Ⓒ 이지혜





혼자

일 년에 두 번, 꼭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영화제가 있다. 봄의 전주와 가을의 부산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매년 늦은 봄에서 여름의 초입에 개막한다. 올해도 5월 초, 긴 연휴를 틈타 전주에 다녀왔다. 제일 처음 전주에 방문한 건 대략 7년 전이었다. 

그때는 평론가가 아니라 씨네필 신분으로 영화를 보기 위해 전주에 갔다. 지금의 전주국제영화제는 스마트폰 어플을 제공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영화 정보를 보고 일정을 계획할 수 있다. 그러나 7년 전만 해도 프로그램지를 받아 영화 소개를 줄글로 읽고, 보고 싶은 영화에 마구 밑줄을 치거나 동그라미를 치며 볼 수 있거나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야 했다.


7년 전 전주는 나의 첫 홀로 여행지였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의 나는 겁이 아주 많았다. 출장으로 1박 2일 타지역에 다녀오는 것조차 꺼릴 정도였다. 혼자 자는 것도 무섭고, 혼자 밥을 먹는 것도, 혼자 다니는 것도 무서웠던 어수룩한 이십 대. 굉장히 상실감에 빠져 있던, 오래 만나던 사람과 막 이별한 이십 대. 언제나 함께였고, 함께였던 일상에서 스스로 떨어져나와 혼자 남길 원했던 이십 대.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당위가 필요했던 이십 대. 그러므로 영화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까지, 그 시절의 나에겐 제법 큰 용기가 필요했다.

 

7년 후, 지금의 나는 혼자를 꽤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좋게 말해서 즐기는 것일 뿐, 혼자가 더 익숙해졌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영화제를 핑계로 한 나홀로 여행은 최고였다. 나서서 타인의 취향을 배려할 필요도 없고, 영화 일정을 억지로 맞출 필요도 없었다. 그 감각에 빠져 나는 지금까지 여행을, 영화제만큼은 혼자 다녔다.

 

이번 전주행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작점이 달랐다. 올해는 조금 도피의 모양새가 있었다. 논문과 강의, 청탁원고에 점철된 일상에 숨 쉴 틈이 없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 것이고, 그 질책에 납득하며 겸허하고 싶지만, 당장 아쉽게도 지니고 있는 삶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의 몫을 지니고 산다는데 나의 몫은 궤가 맞지 않은 채로 삐걱삐걱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현실적으로 따지자면 가지 않아야 하는 게 맞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든 가고 싶었다. 인정하건데 사회인으로서의 책임에 대한 도망이고 회피이기도 했다.

 

결국 글감을 찾겠다는 핑계를 대고 겨우 현실의 일정을 조정했다. 개막일이 거의 닥쳐서 허겁지겁 방을 잡았다. 영화제가 열리는 중심거리 근처의 그럴듯한 방들(위치가 안전하고 위생이 청결하며 후기가 괜찮은)은 전부 매진이었다. 택시를 타고 15분쯤 이동했을 때 나오는 모텔촌의 방이 남아있었다. 나는 한참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1인 여행객, 침대 1개"라는 검색어를 "2인 여행객, 침대 2개"로 고쳤다. 충동적이었다.

 

 

서울책보고_동행_사진02.jpeg

▶ <새벽의 모든>(미야케 쇼, 2024) 스틸 Ⓒ전주국제영화제

 

 

 

새벽의 모든 

침대 하나는 친구가 쓰기로 했다. 내가 건 조건은 "침대가 두 개이니 연휴 일정이 맞으면 와서 방을 같이 쓰면 된다. 못 와도 괜찮다."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일정 공유할 필요 없고, 키도 준비해 둘 테니 잠만 잔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서도, 나와 마찬가지로 일에 치어서 사는 친구가 올지 긴가민가했다. 그것보다 더 자신 없는 건 방을 권하는 마음이었다. 혼자 다닌 지 너무 오래되어서 내가 타인과 타지에서 동행할 수 있는 성품의 사람인지, 같이 방을 쓰며 잠을 잘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빈 침대를 놀리는 것이 아까웠고, 이왕이면 영화제 때문에 전주에 갔던 적은 없다고 말했던, 그러나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친구가 같이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도 나만큼 이 공간에서 행복한 경험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그러한 경험을 하는 데 있어 내가 불청객이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의 마음도 들었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라고 믿으며 친구에게 어색한 동행을 권유했다.

 

 


서울책보고_동행_사진03.jpg서울책보고_동행_사진04.jpg

▶ 소설 《새벽의 모든》과 영화 <새벽의 모든> Ⓒ전주국제영화제

 

 

친구보다 하루 먼저 전주에 도착하고서, 가장 먼저 본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인 <새벽의 모든>이었다. 이 영화는 소설가 세오 마이코가 쓰고 2022년 국내 번역·출간된 동명의 원작 소설 《새벽의 모든》감독 미야케 쇼가 2024년 영화화 한 작품이다. PMS(월경전증후군)를 앓는 여성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남성 야마조에가 주인공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사지 멀쩡히 제 몫을 해내는 사회인이지만,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호르몬 문제와 정신적 질환 때문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몇 번의 이직과 실직 끝에 둘은 '쿠리타 과학'이라는 작은 과학모형회사에서 사회적 동료로서 만나고, 별자리 투영기를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서로의 질환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둘은 서로 관계적으로도, 유형적으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아주 사소한 도움을 주며 단순히 서로의 일부를 아주 조금 이해한다. 그리고 이해받았다는 마음을 안고 생을 살아갈 희미한 희망을 얻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대중 앞에 설 수 없고,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 때문에 낯선 장소는 갈 수 없는 산발적 정신질환인 공황장애 때문에 상담조차 간신히 받으러 간 야마조에가 PMS를 앓고 있는 후지사와를 이해하고 돕기 위해 PMS 관련 책을 빌리는 장면이었다. 객관적으로 야마조에는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없는 처지에 있으며 적극적으로 후지사와를 구해내거나 도울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다. 그러나 그 순간 야마조에는 감정이 널뛰듯 하는 후지사와를 이해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마찬가지로 후지사와 또한 다다미방 한 켠에 스스로를 가둔 야마조에를 되는대로 찾아가 아주 사소한 이해의 손길을 내민다. 그들은 서로의 사적인 공간을 억지로 침범하거나 끌어내지 않는다. 그저 아주 작은 틈, 희미한 한 줄을 서로를 위해 각자의 시간 속에 그어 두고 하루의 일정 부분을 함께한다.

 

 

서울책보고_동행_사진05.jpg

▶ 전주국제영화제를 동행한 친구 중 하나 Ⓒ이지혜

 

 

명사로서 '동행'의 사전적 정의는 "같이 길을 감."을 뜻한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는 "글의 같은 줄"을 말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동행이라는 말이 꼭 여행을 위해 함께 걷는 특별한 여정만 뜻하는 것은 아니겠다고 정의했다. 시차가 있더라도 남이 읽었던 책의 같은 문장을 나도 따라 읽게 되는 것, 같은 영화를 보고 엇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게 되는 것, 유다른 사건에서 동일한 감상을 체험하는 것, 비슷한 시간과 공간을 일순간 함께 경험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모든 상황을 동행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골몰했던 것이다.

 

 

 

동행

빈 침대를 보며 첫날 저녁을 지새웠다. 고단했지만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서울을 떠나온 순간부터 모든 일을 머릿속에서 놔 버렸고, 실컷 영화를 보고 나면 잠을 잘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텅 빈 방이 전에 없이 헛헛했다. 밤새 뒤척이다 쪽잠을 겨우 자고서 둘째 날 일정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친구에게서 전주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쓰고 있는 공간에 다른 사람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는데, 마음이 유다르게 편안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날 새벽에서야 호텔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친구는 이미 제 몫의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친구가 깨지 않길 바라며 피곤에 찌든 깊은 한숨을 겨우 토해냈다. 방 안쪽에 자리한 내 침대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침대의 베개 한 켠에 익숙한 털복숭덩어리가 이불을 반쯤 덮고 누워있었다. 어두컴컴한 방,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저게 뭐지?" 하고 눈을 가늘게 떴다. 희끄무레한 외양이 시야에 들이찼다. 그건 내가 전날 낮, 전주국제영화제의 픽사 굿즈샵에서 사 오고서, 화장대에 아무렇게나 늘어놓았던 곰돌이 인형(영화 <토이스토리>의 딸기랏소)이었다.

 

 

서울책보고_동행_사진06.jpg

▶ 딸기랏소(영화 토이스토리3 등장캐릭터) Ⓒ이지혜

 

 

딱 한 번 집에 친구를 초대한 적이 있다. 사적인 잠버릇이지만 나는 좋아하는 인형 사이에 파묻혀 잔다. 침대 구석에 둥실둥실한 인형들을 잔뜩 쌓아두고 싫다고 버둥거리는 반려묘를 끌어안고서야 잠에 든다. 친구가 그걸 알고서 인형을 눕혀 둔 건지 확신은 없지만 나는 친구가 방의 풍경을 보았으리라고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불을 덮고 누워있던 곰돌이 인형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다가 친구가 사다 놓은 숙취해소제를 뒤늦게 발견했다. 서울에서의 생계와 책임을 내다 버리고 대략 215km쯤의 거리를 도망쳐서 전주에 왔는데, 그 순간 나는 못 견디게 내 방이, 버거웠던 일상이 그립고 허전해서 전날 잠을 못 잤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준 건 나와 동행 해 준 친구였다. 고작 일상의 한 순간을 공유했을 뿐인데, 그걸 재현해 준 친구 덕분에 이상하게 마음 전체를 이해받은 기분이었다.


친구와 친구들을 만나 몇 편의 같은 영화를 따로, 또 같이 보았다. 연석한 자리에서 보진 않았고 영화제 특성상 같은 상영관 안에서 나오는 자리를 주워 대부분 떨어져서 봐야 했다. 개막작인 <새벽의 모든>은 큰 이변이 없다면 조만간 한국에서 개봉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봤던 영화 중 어떤 것은 한국에서 상영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영화는 함께 동행했던 그날의 우리만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이므로 그 영화를 보던 시간의 서로를 유일하게 이해할 것이다. 

결코 짧지 않았던 여정 중 우리는 몇 끼의 끼니를 함께 먹었다. 친구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숙면했다. 서울에선 체험하지 않았던 것들을 함께 경험했다. 친구와 친구들이 웃는 걸 보며 행복했고, 같은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웠다. 기분 좋게 술에 취해 한밤의 길거리를 걸었다. 달빛과 별빛이 만들어 낸 새벽의 그림자를 보며 함께 숙소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런데 그건 7년 전 이해받지 못했으므로 차라리 혼자이고 싶었던, 어떤 절망의 모양새를 띈 깨달음은 아니었다. 이번엔 좀 달랐다. 혼자 살 수 있다. 혼자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행복한 모양의 삶이, 찰나라도 동행하기에 희망이 되는 삶이 있다. 

동행은 단순히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각자의 길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동행이란, 서로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자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이다. 동행은 이해다. 

 

 

💌 : 미야케 쇼는 영화로 먼 동행을 꾀하는 감독이다. 그는 <새벽의 모든>을 16mm 아날로그 필름으로 촬영했다. 그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있었던 GV와 인터뷰에서 디지털이 아닌 필름으로 굳이 영화를 찍는 이유에 대해 “누군가는 계속 필름으로 영화를 찍어야 후배들도 필름 촬영에 대해 전수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의 뜻을 일부 이해했고 깊이 감명받았다. 그의 시도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지혜.jpg

 

이지혜

영화평론가 / 문화평론가

 

영화전문매체 〈코아르Coar〉(클릭하면 이동)에 영화 평론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국내판) 웹진〈문화톡톡〉(클릭하면 이동)에 문화 평론을 매월 고정 연재하고 있다.

2023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계열 박사과정생 연구지원금 수혜를 받았다. 

경희대학교 K-컬처·스토리콘텐츠연구소 소속으로 한국문화콘텐츠 연구자로도 활동 중이다. 

 

▷문화전문매거진 《쿨투라》 제 16회 영화평론부문 신인상으로 등단(2022)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전북부문 심사위원(2023)

서울역사영화제 프로그래머(집행위원)(2024)

 

 leehey@khu.ac.kr

인스타그램@leehey_c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