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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9

SPECIAL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 스물 여덟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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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 

스물 여덟 번째 이야기

 

 

 최종규(숲노래)

작가

 

 

Emotion Icon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은  

헌책을 좋아하는 이가 들려주는 헌책 서평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

 

 

 

 

 ‘함께걷기(동행)’란 무엇일까? ‘함께’라는 낱말은 ‘하늘’처럼 ‘하나’‘하게(크게)’ 마음을 모두어서 나아간다는 숨빛을 나타낸다. 우리나라를 이룬 오랜 사람들을 ‘한겨레’라 하고, ‘한’이란 ‘하늘’과 ‘하나’와 ‘하다(크다)’를 나란히 가리킨다. 둘레에서 아무리 거짓말이나 속임말을 쏟아내더라도 오직 하늘빛으로 바라볼 줄 알기에 함께 손을 잡고서 걷는다. 가까운 옆 마을이건 먼 이웃 마을이건 언제나 한마음으로 마주하는 사이라고 여기기에 함께 뜻을 모으면서 환하게 마주한다. 나라(정부)가 앞장선 거짓말 수렁에서도 바른 눈을 뜬 사람들 이야기를 《드레퓌스》로 읽는다. 우리 살림빛을 되새기면서 저마다 마을빛을 가꾸는 길동무라는 뜻을 《제주방언 연구》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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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N.할라즈 글

황의방 옮김

한길사

1978.9.5.

 

 

 

  우리나라는 ‘바른말’을 ‘바다’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밭’이 있을까요? 아니면 ‘바른말’을 들려주는 사람을 ‘바퀴벌레’쯤으로 여겨서 마구 ‘밟’거나 ‘바닥’에 팽개질을 할까요? 우리말 ‘바르다’는 ‘밝다’하고 말밑이 같습니다. ‘바르다·밝다’는 ‘바다·바람’에다가 ‘바탕·밭’하고 말밑이 같아요. 그리고 ‘발·받치다’하고도 말밑이 나란하지요.

  발로 바닥을 받치기에 든든히 섭니다. 발로 바닥을 디디지 못 하면 서지도 못 하고 걷지도 못 해요. 하늘에서는 바람을 마시고, 땅에서는 “바다가 아지렁이를 거치고 구름을 지나서 내리는 비가 스며든 샘”을 ‘물’로 맑고 밝게 받아들여서 목숨을 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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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퓌스》는 이 나라가 아주 새카맣게 잠겨들던 끝자락에 한글판이 나옵니다. 바른말을 펴고, 바른길을 걸으며, 바른눈을 떠서, 바른넋으로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어떻게 나라를 살리고 마을을 북돋우고 모든 사람을 일깨우고 일으켜서 사랑으로 이끄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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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하게 ‘나쁜 놈’ 소리를 듣고서 짓밟히고 시달리던 드레퓌스 님은 날마다 죽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끝까지 살아남으면서 바른빛을 펴려고 했습니다. 이이 곁에서 에밀 졸라 님이 가시밭길을 함께 걸었어요. 애먼 덤터기를 쓰는 이웃을 모른 척하지 않은 에밀 졸라 님은 이웃한테 손가락질을 받다가 나라를 등져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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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날 “드레퓌스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드디어 드러났으나, 오래도록 거짓말을 일삼았을 뿐 아니라, 힘·이름·돈으로 윽박지른 나라(프랑스 정부)는 1995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개를 숙였다지요. 바른뜻을 품고서 함께 걷는 길은 되레 고달플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온넋으로 사랑을 품고 바라보는 길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든든하면서 즐겁고 호젓하게 노래하는 꽃길이라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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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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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방언 연구》

박용후 글

동원사

1960.9.8.

 

 

 

  이웃 고장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늘 이 고장에 헌책집이 있는가부터 살핍니다. 새책집에는 ‘막대기(바코드)’를 받아 ‘나라책숲(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간 책만 깃듭니다. 이와 달리 헌책집은 ‘막대기 없이 조금만 찍어 이웃하고 가볍게 나눈 책’이 깃들어요.

  ‘안 파는 책(비매품)’을 만나려면 헌책집에 갈 노릇입니다. “‘안 파는 책’을 뭣 하러 찾아다녀?” 하고 묻는 분이 많은데, 일제강점기에 나온 책이건, 달책(잡지)에 딸린 덤(별책부록)이나 만화책뿐 아니라, 마을빛을 헤아린 꾸러미인 ‘지역문화·역사를 다룬 책’은 거의 ‘안 파는 책’으로 조금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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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8월에 제주 〈책밭서점〉에서 《제주방언 연구》를 만났어요. 책밭지기님은 “이거 비매품으로 100권만 나온 책이야. 가리방이라고 알아? 쇠붓 있잖아? 그거로 하나하나 긁었는데, …… (제주) 관공서에서 버리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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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말·제주살림·제주넋을 살리고 품는 길은 여럿입니다. 하늘나루(공항)를 더 짓거나 부릉길(찻길)을 더 닦기보다는, 마을빛을 온몸으로 사랑하며 여민 작은책 하나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둘레에서 왜 제주섬을 찾아갈까요? 번쩍번쩍 올리는 높다란 집 때문에 제주섬에 찾아가지 않겠지요. 제주 사람이 품은 제주 바다와 제주 하늘과 제주오름과 제주 살림이 있기 때문에 찾아가겠지요. 바다와 하늘을 한몫으로 아우른 제주 말씨를 느끼고 헤아리면서 함께 이웃으로 지내려고 찾아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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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후님은 제주사람으로서 제주살림을 담아내려고 몹시 땀을 쏟았다고 합니다. 오랜 고을 이름인 ‘탐라’가 왜 ‘탐라’인지 아직도 여러 말이 오가는데, 두툼한 꾸러미 끝자락에 ‘제주말씨’로 돌아본 말밑풀이(어원분석)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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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고찰하여 온바와 같이 ‘탐라(耽羅)’는 ‘탐무라(耽牟羅)’에서 온 것인데 ‘탐무라’는 곧 ‘섬무라’요, ‘무리’와 같은 말로써 ‘모리>모이>뫼’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뫼’로 된 것이므로 ‘섬무라’는 곧 ‘섬뫼(島山)’를 뜻하는 것이었음을 알수 있다.” (4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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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숲노래)

작가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쓴다. 

사전 쓰는 길에 이바지하는 책을 찾아 헌책집-마을책집을 1992년부터 다닌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쉬운 말이 평화》,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곁책》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