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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9

BOOK&LIFE

[SIDE B] 밤 10시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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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파도타기, 감정디자인

Ep. 5

밤 10시가 되면

 

고선영

작가

 

 

 

*

 

 

 


 겨울이 되면 책방에서 키우던 화분이사 준비를 한다.

순식간에 영하로 떨어지면 곧장 얼어 며칠만 지나도 곤죽이 된다. 냉해를 입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식물을 키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매일 매일 잘 보살피겠다고 맘먹고 물을 주면 어느새 말라 죽는다. ‘내가 물을 얼마나 줬는데….’ 하며 억울한 얼굴이 되어도 소용없다. 화분에서 시들어 버린 식물을 통째로 꺼내면 뿌리는 물에 퉁퉁 불어서 썩어 있다. 한번은 <마음북클럽> 마북이(모임마다 참여자에게 애칭을 붙인다)에게 길들인 마켓(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을 한 번씩 모아서 물물교환 한다)에서 예쁜 덩굴 식물을 받았다. 색깔이 싱그럽고 모양이 아담해서 마음을 주고 계속 2~3일에 한 번씩 물을 갈아줬는데 이파리 끝이 마르기 시작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두 달 신경을 못 썼다. 그랬더니 오히려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식물하고 함께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22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30%인 1448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기사의 제목은 ‘[반려동물 인구 15000만 시대] 국민 4명 중 1명 ‘개님·양님 집사’, 57%는 이웃과 갈등 겪어…공존 위한 사회 인프라 갖춰야’이다. 이 제목을 보니까 동물과 함께하기 위해 인간과 함께할 때의 어려움은 감당한다는 뜻 같아서 아이러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가 보다.


 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악어책방 책방지기이기도 하다. 악어책방은 ‘우리동네문화발전소, 악어책방’이라는 이름이 정식 이름이다. 개인이 갖고 있거나 우리 집의 소소하고, 재미있고, 멋진 문화를 발견해서 서로 나누고 퍼뜨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지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책방지기의 철학을 담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3년이 넘게 <마음북클럽>을 진행해 왔다. 처음에는 나의 또 다른 직업이기도 한 ‘부모교육’을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부모살롱>을 진행했는데 시간이 흘러 <부모살롱>은 자연 소멸하였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소멸된 것 같다) 그다음에 진행한 것이 <마음북클럽>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에 만났는데 한 달 동안 4번을 만나면서 우리는 재밌는 문화를 많이 만들고 공유했다. 


 첫 주에는 ‘그림책’을 보고 대화를 이어 나갔고 이것은 현재 <그림책의자>라는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이다. 둘째 주는 <영화 살롱>으로 맥주 한 캔씩 준비해서 보고 싶은 영화를 함께 봤다. 셋째 주는 <밤 산책 X 길들인 마켓>으로 가까운 공원을 밤늦도록 걸으며 대화하고 모여서 키득거리면서 물물교환했다. (‘키득거리면서’에 밑줄 쫙!) 넷째 주는 <지정 책 독서>를 했는데 대부분 못 읽어올 때가 많았지만 우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개중에는 늘 부담을 느낀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이 외에도 <침묵 드로잉>을 하거나, <음악 살롱>을 열기도 했다.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패턴이 생겨 계속 진행했다. 그리고 가끔은 공원에 대자로 누워 있거나 맨발로 함께 걸었고, 보드게임이나 ‘신발 던지기’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어른들도 놀아야 한다는 나의 철학이 진짜 어른들을 뛰어놀게 했다. 


 그렇게 열심히 몇 년을 하다 보니 마북이들이 점점 바빠졌다. 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나무 역할을 맡은 것처럼 서운함과 당황스러움, 쓸쓸함을 느꼈다. 자주 못 오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것이 나를 점점 힘들게 했다. 같이 놀았던 친구들이 이제 다시는 나를 찾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시점에 또 다른 문이 열렸다.

 


 책방에서 2년째 <마음,씀>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함께 모여 자신의 감정을 글로 쓰고 나누는 시간이다. 함께하는 분들에게 애칭도 붙여줬다. ‘쓰미’. 마음을 쓰느라 만났으니 우리는 모두 ‘쓰미’다. ‘마음,씀’은 한 주에 한 번 목요일에 만나고, 매일 저녁 10시 무렵부터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까지 쓰미의 감사 일기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올라온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온라인에서 만나기도 한다. 온라인 쓰미와도 ‘감사 일기’를 쓴다.


 처음엔 ‘감정 일기와 감사 일기’를 혼자서 썼다. 그러다가 함께하는 챌린지 프로그램이 유행일 때, 카카오 100이라는 플랫폼에서 30일, 50일, 100일 단위로 함께 하기를 반복했다. 블로그에도 계속 남겨서 약 290개 정도가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쓴 ‘감정일기’는 훨씬 더 많고 ‘감사일기’도 노트로 여러 권이다. 왜 그렇게 감정과 감사를 기록했을지 떠올려보면 수시로 불안, 초조를 크게 느끼는 나의 마음 때문이다. 불안, 초조, 두려움, 수치심, 자괴감, 슬픔, 무기력함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나를 덮치면 나는 질식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럴 때 나를 건져 준 것이 ‘감정 일기’와 ‘감사 일기’이다. 그렇게 꾸준하게 했던 작업이 나의 콘텐츠이자 나의 업이 되었다. 감정디자인의 근간이 되었던 ‘감정 일기’와 ‘감사 일기’는 현재도 나의 삶을 계속 건강하게 흘러가도록 돕는 바퀴와 같다.


 이제는 7~8년이 되어 자동으로 써 지지만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며칠 쓰다가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내 현실은 지금 이 모양인데...’ 그런 생각이 들면 또 며칠은 건너뛰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또 썼다. 어떤 때는 3개월가량 안 쓰기도 했다. 나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메말라가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어서 쓴 것도 있지만, 기록한 것을 나중에 살펴보니 마음에 에너지가 차오른다. 그것을 몇 번 경험한 이후로는 더 열심히 기록했고 더는 그것이 나에게 힘든 일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해도 혼자서 하려고 하면 자꾸 요령을 피우게 된다. 그래서 ‘할 수밖에 없는 묘책’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함께 하기’다. 혼자서 밥을 오래 먹어본 사람은 안다. 함께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함께 하는 것은 그 에너지를 두 배, 세 배 크게는 백 배 이상도 끌어 올릴 수 있다. 


 물론 ‘감사 일기’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는 것도 안다. 너무 합리화한다, 끌어당김의 법칙과 같아서 미신 같다, 일부 효과는 이해하지만, 너무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사람, 억지로 쓰는 건 아무짝에 쓸모없다 등이다. 그런데 내가 ‘감사 일기’를 쓰는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나에게 너무나 필요해서다. 


 처음 이야기한 식물로 돌아가 보자. 모든 식물은 다 다르다. 어떤 식물은 물을 매일 매일 마셔야 하고, 어떤 식물은 한 달을 마시지 않아도 끄떡없다. 잘 키우는 방법은 어떤 식물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식물에 맞는 방식대로 보살펴 주면 된다. 나는 말하자면 매일 매일 물을 주고 가꿔야 잘 자라는 식물인 것이다. 나를 계속 연구해 보니 나는 마음이 자꾸 쪼그라드는 사람이다. 그것이 기질, 성격적인 원인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 보니 세상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잘 안된다. 사는 것이 대부분 즐겁고, 재밌는 사람이라면 ‘감사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노력을 해서 계속 펴주고 또 펴줘야 펴진 상태를 유지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사람이다. 그저 물을 한 번 주고 한 달 동안 끄떡없는 사람이 가끔은 정말 부럽다. 


 그러나 매일 매일 물을 주고 보살피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내가 매일 매일 습관화해서 계속 나를 사랑하는 행위, 즉 ‘감정’을 보듬는 방법을 나는 꽤 많이 찾았다. ‘감정 일기’, ‘마음 관찰일지’, ‘감정 드로잉’, ‘명상’, ‘상상’이 모든 것은 다 나를 위해서 내가 고안해 낸 것이다. 그런데 나한테 적용해 보니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 것이고 나의 방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실행해서 편안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감사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감사 일기’‘감사’를 습관화하는 훈련이다. 이것을 나는 ‘관점훈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이라면 살면서 힘든 일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세상을 살 때 겪게 되는 많은 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나의 태도는 내가 제어할 수 있다. 처음부터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사’라는 ‘관점훈련’을 통해 ‘습관화’하니까 점점 나아진다. 아무리 미칠 것 같은 삶이라도 찾고 또 찾다 보면 분명 감사한 일이 있다. 감사에 대해 생각한 것을 그림으로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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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표는 적이다!

적은 다름 아닌 ‘나의 부정적인 생각’ ⓒ고선영

 

 

 

 

 10시가 되면 감사 일기가 올라온다. 오늘 힘들었던 이야기, 아이가 속 썩여 눈물지은 이야기, 갑자기 가까운 이가 돌아가신 이야기,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감사를 찾는다.


‘산책할 때 핀 꽃을 봐서 감사.’

‘반려동물이 사랑해 주어 감사.’

‘한결 편해져 두통이 사라져서 감사.’

‘퇴근 후에 동료와 수다 떨어서 감사.’

‘맛있는 것 먹어서 감사’

‘살아 있어서 감사.’


 뭐 대단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각자의 감사 일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오르고, 눈이 반짝반짝한다. 그저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감동이고, 감사해서 ‘감사합니다.’를 읊조리다 스르륵 잠이 든다. 


 그렇게 감사하다 보니 또 <마음북클럽>을 몇 달 쉬고 다시 열게 되었다. <마음,씀>은 줄줄이 사탕처럼 <어린이 마음,씀>을 시작했고, <청소년 마음,씀>을 준비하고, 온라인으로도 <마음,씀>을 하고 있다. 마북이와 마음 쓰미들은 이제는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친구들이다. 방금도 서로 ‘감사 일기’를 쓰고 같이 짧게 서로를 응원했다. 또 마음이 채워진다. 


 

이 글을 읽어주는 여러분에게도 나의 감사 부적을 선물하고 싶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매일 매일 일어나길.

함께 하면 감사한 친구들이 여러분 옆에 꼭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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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고선영의

감정의 파도타기, 감정디자인>

감정의 파도를 맞을 때 살아남는 법:

먼저 손을 내밀어 보자! 분명 내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을 것이다. 

높고 거대한 파도가 나를 삼키려 할 때 옆에 손잡은 이와 함께 한다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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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영

작가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 고선영입니다.

‘감정디자인’을 고안해 운영하며 마음의 힘을 실험하는 중입니다.

우리동네문화발전소, 악어책방 책방지기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수집합니다.


《감정도 디자인이 될까요》,

《애정결핍》, 《엄마를 통해 나를 본다》를 썼습니다.

서울에서 악어책방을 운영합니다.

 

sunyoungkoh@gmail.com

인스타그램 @abl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