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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39

SPECIAL

[헌책보고 고전보고] 동행, 따뜻한 삶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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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보고 고전보고 Ep. 29

동행, 따뜻한 삶의 조건

 

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Emotion Icon<헌책보고 고전보고>는 헌책과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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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능력이 뛰어났던 로빈슨 크루소는 홀로 무인도에서 집도 짓고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길렀다. 그러다 하루는 생각했다. 지독하게 외롭다고.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누군가와 함께한다. 인간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소 누리는 삶과 사교 활동을 떠올려 보자. 로빈슨 크루소처럼 기본적인 의식주를 홀로 어찌어찌 해결한다 해도 풍요로운 삶과 정서적 만족을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독립적인 기질, 자립하는 기질이 멋지다고 선망받지만 정작 그 누구도 온전히 독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얄궂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인간의 숙명이다. 따라서 이 의존성에 보다 긍정적인 어휘를 써주도록 하자. ‘동행’이 그것이다. 항상 우리 곁에 누군가가 있으므로 이 단어는 적절하다. 그 누군가는 때로는 성가시고, 때로는 도움을 주며 내 인생의 몇 페이지를 함께한다. 

이는 문학 작품 속에서도 생생하게 보인다. 등장인물은 개방된 사회 안에서 인생을 영위한다.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이루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그들만의 서사를 만든다. 물론 이 부분에 태클을 걸 수도 있을 것이다. 픽션에는 온갖 설정이 난무하고 개중에는 누군가와 동행하는 삶이 불가능한 등장인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물은 인생을 타인과 함께한다.

 



일러스트 1- 5월.png

© 키두니스트 Kidoonist

 

 


작품의 극단적인 설정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동행’하는 삶을 실현하는 예가 바로 《모스크바의 신사》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개방된 곳에서 살아가지 못한다.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호텔 연금형을 당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한평생을 호텔 안에서만 보내고 자연히 그가 할 수 있는 일과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속에서도 다양한 동행 상대를 만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우크라이나 관리의 딸 니나이다. 우연히 만난 관계지만, 니나와 주인공의 관계는 인생에 있어 동행이란 개념을 가장 풍요롭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호텔이란 구심점에 갇혀서 니나의 일생을 지켜본다. 맨 처음 만났을 때 니나는 요정 같은 어린아이이다. 시간이 지나자 그 아이는 학구적인 소녀로 성장하고, 그다음에 만났을 때는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여성의 모습이 된다. 폐쇄적인 환경에 있는 주인공이지만 니나는 때때로 그가 있는 구심점에 다가와 일생을 동행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딸을 낳아 주인공에게 맡긴 뒤 남편을 찾아 떠나고, 그 후에 실종되기 때문에 니나 본인과의 동행은 도중에 끝나버린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니나가 남긴 어린 딸을 키움으로써 그녀와의 동행을 이어가며 삶을 따뜻하게 펼쳐나간다.

물론 이 경우는 유달리 따뜻한 사례이다. 세상에는 모스크바의 신사처럼 온기로 가득한 관계만 있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누구나 동행을 한다. 예컨대 《향수》의 주인공은 천성적으로 사교 욕구가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그도 생계를 위해, 그리고 자아실현을 위해 가게에서 일한다. 때로는 (겉으로나마) 제법 인간적인 사제관계를 맺기도 한다. 《향수》 영화판의 경우 자신과 인간적인 동행을 할 상대를 진심으로 원하기도 했다. 대놓고 악인 서사를 표방하는 프라하의 묘지에서조차 주인공은 자신의 사기 행각을 위해 여러 사람들과 협력한다. 

 

 


일러스트 2- 5월.png

© 키두니스트 Kidoonist

 

 

 

결국, 온전히 혼자서 사는 사람은 없다. 모든 개인은 섬이라고들 하지만 완전히 섬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행’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이 따뜻하고 풍요로워지는 ‘동행’을 만들어가는 지혜일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불린다. 어버이날, 어린이날에 이어 부부의 날 등 가족과 관련된 기념일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스승의 날까지 있으니, 5월은 동행의 달로 볼 수도 있으리라. 이달이 지나기 전에 우리와 동행하는 상대에게 한 번쯤 연락을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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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두니스트(Kidoonist)

웹툰 작가, 편식하는 독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장르문학 위주로 읽는 습관이 있다.

고전문학의 재미를 알리고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수십 권의 책을 만화로 리뷰했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 사는 데에 쓰고 있으며 언젠가 개인 서재를 갖고픈 꿈이 있다.

《고전 리뷰툰》, 《고전 리뷰툰 2》를 출간했다.

교양만화 플랫폼 <이만배>에서 고전 리뷰툰 플러스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