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36

SPECIAL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 스물 다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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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 

스물 다섯 번째 이야기

 

 

 최종규(숲노래)

작가

 

 

Emotion Icon 숲노래의 어제책 이야기 <헌책·옛책·손빛책으로 읽는 오늘>은  

헌책을 좋아하는 이가 들려주는 헌책 서평입니다. 매 호 독자들을 만나러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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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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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에 처음으로 ‘가리기(투표)’를 하는 사람이 있고, 벌써 숱하게 ‘가리기’를 해본 사람이 있다. 그런데 1987년까지 제대로 ‘가리기’를 못 했다고 여길 만하다. 1960년에 4월 너울이 일며 비로소 ‘가리기’를 되찾았으나, 서슬퍼런 총칼에 억눌려 다들 숨을 죽인 채 떨던 나날이다. 겨우 찾은 ‘가리기 몫(투표권)’이었어도, 벼슬자리를 거머쥔 이들은 아직 끄나풀이 많았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 ‘가리기’를 할 적마다 다시 처음으로 가서 새길을 열려고 땀을 빼는 셈일 수 있다.


나라가 있더라도 나라지기가 허튼짓을 하면 숱한 사람들이 고단하다. 나라가 없더라도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짓는 살림지기로 설 수 있다면, 나라일꾼을 슬기롭게 가릴 만하다고 느낀다. 1917년에 태어나 우리말과 우리글조차 제대로 쓰기 힘든 한복판에서도 우리말과 우리글로 이 삶을 노래하는 마음을 아로새기다가 이슬로 사라진 사람이 있다. 우리로서는 ‘우리 노래님’일 텐데, 이분이 태어난 곳이 이 땅이 아닌 먼 나라였던 탓인지, 요새 중국에서는 ‘우리 노래님’을 함부로 그 나라 사람인 듯이 파가려고 한다.


여태 모르던 일을 앞으로도 모를 수 있다. 이제껏 몰랐지만 오늘부터 익히면서 처음으로 새길을 내딛을 수 있다. 어질게 어른으로서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돌아보면서 묵은 손빛책 두 자락을 다시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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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年 國民投票公報 (憲法改正案)》

 편집부 엮음

 선거관리위원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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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한글로 ‘헌법’이라 적지만, 꽤 오래도록 한자로 ‘憲法’이라 적었습니다. 예전에는 한글 아닌 한자로 까맣게 적던 글이라면, 요사이는 거의 모두 한글로 바꾸었습니다. 2000년 무렵까지만 해도 한자를 쓸 줄 모르면 손가락질하거나 나무라는 벼슬꾼과 글바치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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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7年 國民投票公報 (憲法改正案)》 같은 꾸러미를 누가 읽을 수 있을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조선 무렵에는 아예 중국글로 적어서 내려보냈으니, 한자를 조금 읽더라도 뜻을 새기기 훨씬 힘들었습니다. 흙살림을 짓거나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책은커녕 글씨조차 쓸 일이 아예 없었어요. 퍽 오래 씨내림으로 잇던 임금과 벼슬자리에, 중국글로 뭇사람을 억누르는 얼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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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헌법’과 ‘국민투표’라는 일본스런 한자말을 수수하고 쉽게 우리말로 바꾸는 첫발을 내디딜 일이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첫길·으뜸길 ← 헌법’을 생각할 만합니다. ‘가림·고름 ← 투표’를 생각할 수 있어요. “헌법은 ‘첫째가는 길’이야”나 “국민투표는 ‘우리 누구나 뽑는다’는 뜻이야”처럼 풀어서 말하지 말고, 처음부터 어린이 눈높이로 새말을 여미는 길을 찾으면서 바꿀 만하지요. ‘선거관리위원회’조차 아닌 ‘選擧管理委員會’ 같은 이름은 누가 읽겠습니까. 누구보다 어린이한테 묻고, 어린이가 꿈을 펼 새 나라와 새터를 일굴 마음을 펼 첫걸음을 올해에 다시 내디딜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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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윤동주 글

 전광하·박용일 엮음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2.7.


  중국에 우리 한겨레가 무척 많이 삽니다. 처음부터 한겨레가 많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나라를 잃고 집을 잃고 논밭까지 잃고 아이들마저 잃은 슬픈 사람들은 이웃 나라로 건너갔습니다. 러시아하고 일본에도 한겨레는 숱하게 건너갔고, 때로는 끌려갔습니다. 맨몸으로 걸어갔어요. 맨손으로 땅을 일구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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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님은 ‘명동촌(용정시)’에서 1917년에 태어납니다. 그 무렵 한겨레는 고되게 일하면서도 저마다 꿈을 품었고, 먼 나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이 어질게 배워서 참하게 일어설 새길을 그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 윤동주님 노래는 여러 동무와 이웃과 뒷내기 손길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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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석 자락을 꾸려 스스로 하나, 이양하님한테 하나, 정병욱님한테 하나 남겼고, 이 가운데 전남 광양 어머니 집 독에 고이 숨긴 정병욱님 꾸러미가 1945년까지 살아남았다지요. 2002년에 흑룡강에서 펴낸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를 읽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한겨레로서 ‘한말’을 ‘한글’로 담은 글자락이고, 예전 북녘말씨하고 연변말씨를 새삼스레 돌아볼 수 있더군요. 그런데 중국은 뜬금없이 ‘중국조선족 애국시인’이란 이름을 붙이면서 윤동주 님을 ‘중국 역사’로 끼워맞추려 합니다. 어처구니없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를 찾아서 누리는 나날이라면, 나라지기부터 앞장서서 ‘한겨레 한노래’를 편 옛 자취를 제대로 밝힐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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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숲노래)

작가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쓴다. 

사전 쓰는 길에 이바지하는 책을 찾아 헌책집-마을책집을 1992년부터 다닌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쉬운 말이 평화》,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곁책》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