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1
INSIDE[오늘의 헌책] 집에서 하지 못할 일은 없나니
오늘의 헌책 [집콕]
집에서 하지 못할 일은 없나니
헌책에서 발견한 집콕 생활 팁
이번 <오늘의 헌책>에서는 1월의 주제 ‘집콕’과 어울리는 헌책을 찾아보았어요. 상현서림 서가에서 우수수 발견한 이 보물 같은 책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앙증맞고 귀여워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답니다.모든 책을 속속들이 소개하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책 목록이나마 한 번 대공개해보겠습니다.
1. 《집에서 만드는 중국요리》(1979년 여성동아 4월호 제1부록)
2. 《집에서 만드는 서양요리》(1979년 여성동아 7월호 별책부록2)
3. 《4계의 저장식품》(1979년 여성동아 11월호 제2부록)
4. 《알뜰가족 도시락》(1980년 여성동아 4월호 제1부록)
5. 《뜨기 쉬운 새로운 뜨개질》(1979년 여성동아 10월호 별책부록2)
1979년 즈음, 그 시절은 많은 것을 집에서 해결(?!)하던 시기였던가 봅니다. 우리가 코로나19로 ‘홈트’니 ‘집밥’이니 해가며 집에서 밥해 먹고, 취미생활하고, 운동하는 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인 것마냥 수선을 떨 때, 우리의 1970년대 잡지들은 이미 알찬 부록으로 집에서 보내는 일상생활에 대해 일가견을 보여주고 있었지 뭡니까.
#1. 집에서 광동식 상어지느러미 요리를 해먹었다고?
여기서 특히 먼저 탐구하고 싶은 책은 《집에서 만드는 중국요리》입니다.
집에서 중국요리를? 네. 당시에는 “탕수육이 먹고 싶어.” “그래? 어느 중국집에서 시킬까.” 이런 패턴이 아니라, “탕수육이 먹고 싶어.” “그래? 그럼 오늘 ‘달고 새콤한 녹말소스에 토마토와 파인애플 맛이 어울리는 광동식 탕수육’(43쪽) 한 번 만들어볼까?” 이런 패턴이었나 봅니다. 일단 이 책의 체계적 구성이 놀랍습니다. 닥치고 요리 레시피로 들어가는 구성이 아니라 중국요리에 대해 ‘알아야 할 기초지식’부터 시작하는 이 논리적 구조!
“중국요리는 고기와 야채를 잘 조화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남비(냄비 아님 주의!) 하나로 볶음에서 찜까지 손쉽게 만들 수 있는데
맛 또한 여러 가지로 변화가 있어서 각국 어느 곳에서나 세계의 요리로 환영을 받고 있다.
재료를 무리하지 않게 사용하는 점에서도 주부들과 친해지고
특히 젊은 세대의 가정에서는 중국요리의 합리성은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재료·맛·순서를 생각하여 요리를 합리적으로 구성, 식단을 짜기 위해 간단한 지식을 알아두면 편리하다.”
(16쪽)
그렇다고 합니다. 중국요리의 합리성이라니. (짝짝짝) 이는 젊은 세대의 가정에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식단 세우는 법’, ‘중국요리 재료와 용어’, ‘조미료와 향신료’, ‘조리에 필요한 기구’, ‘중국 차와 술’, ‘중국요리 맛과 지방색’, ‘요리 이름 읽는 법’까지 알차게 기초지식을 쌓고난 다음에 비로소 다음과 같은 순서로 요리 소개가 나옵니다.
1) 식사의 전주곡 전채요리
2) 맛과 볼륨을 함께 육류요리
3) 순수한 진미 해물요리
4) 변화 풍부한 달걀·두부·야채요리
5) 간식·경식이 되는 뎬싱
이 어찌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순서인지요.
이 중에서도 ‘순수한 진미 해물요리’ 코너에 소개된 <광동식 상어지느러미> 요리에 저는 무릎이 꺾였습니다. 하... 집에서 상어지느러미 요리를? 일단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가 난제입니다. 그것을 알았는지 이 요리의 부제는 이렇게 붙어있더라고요.
!! 진귀한 재료, 상어지느러미를 얹은 광동식 볶음 요리 !!
재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65쪽)
상어지느러미(말린 것) 50g, 전복 1개, 해삼(말린 것) 2개, 죽순(통조림),
표고버섯, 송이버섯, 육수, 달걀흰자, 생강·산초·고추기름·소금·녹말가루·화학조미료
일단 재료를 모두 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어 지느러미에 전복에 해삼에 송이버섯까지... 하아. 뭔가 집콕하며 중국요리를 해먹으려다 보니 외식할 때보다 돈이 더 많이 드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은 뭐죠? 그래도 조금 더 가봅시다.
두 번째 난관은 만드는 법에서도 밀려옵니다. ① 말린 상어지느러미는 4시간 정도 물에 삶아서 쓴다. 그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 잠시 후에 뽀얗게 되면 다시 뜨거운 물로 갈고 생강, 산초를 넣어 끓인다. !!! 잠깐~! 지금 ⑥번까지 이어지는 레시피 ①번에서만도 시간이 4시간 걸린다고요??? 아, 이거 집콕하며 중국요리 해먹는 데 벌써 지칩니다.
우리는 과연 집콕하며 중국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걸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 재료를 사느라 돈이 많이 드는 것이나 상어지느러미를 4시간 삶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상어지느러미, 흔히 ‘샥스핀’이라 불리는 이 음식 재료를 얻으려면 상어에게 큰 고통을 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상어는 지느러미 없이 헤엄을 칠 수도 없고, 숨을 쉬지도 못하는데 오로지 지느러미만 베어내고 바다에 버리는 잔인한 어획 방식은 모든 생명체가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갈망하는 우리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죠.
이 상어지느러미 요리는 현재 세계적으로 퇴출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바로 이 부록 요리책으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인류의 진보겠죠? 이렇게 옛날 요리책이 보여주는 시대 변화가 의미심장합니다. 그나저나 일단 중국요리는 집콕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2. 집집마다 이 정도 저장식품 계획표는 다들 있지 않아?
1979년식의 집콕 요리는 좀 어려울 것 같으니 이왕 집에 머무는 것, 겨울잠을 준비하는 북극곰마냥 저장식품 한 번 만들어보죠. 자, 이번에 볼 별책부록도 그 디테일과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바로 《4계의 저장식품》!
앗. 그런데 겨울에만 음식을 저장해두려고 하는데, 4계...........??? 조금 압박스럽지만 일단 부록을 펼쳐봅니다.
당장류와 피클류(산저장) _요리/한정혜(한정혜요리학원 원장)
포·자반·부각류 _요리/한복려(궁중 음식연구원 강사)
젓갈류 _요리/하선정(하선정 요리학원 원장)
장아찌류 _요리/한승희(정경요리학원 강사)
야채를 이용한 말랭이류 _요리/왕준연 (한국식생활 개발연구회 회장)
촘촘하게 분류된 저장식품의 종류도 인상적이지만, 여러분... 저 라인업 실화입니까? 요리라면 1도 모르는 저도 아는 인간문화재 한복려 선생님부터 한국 제1호 요리연구가이자 한국 최초 요리학원장으로 활동하셨던 하선정 선생님 (다들 하선정 멸치액젓 드셔보셨잖아요~), 1960년대에 일본으로 요리 유학을 떠나 1970년대에 한정혜 요리학원을 열고 한국 식생활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사절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의 대표적 요리 연구가로 자리매김한 한정혜 선생님까지... 한 여성지의 (제1부록도 아닌) ‘제2부록’을 담당하기에... 이분들의 명성은 너무 대단하네요.
그런데 더 대단한 게 있습니다. 이 모든 음식을 해내기에 앞서 당당하게 목차 제일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연간 식품 저장 계획’이 바로 그것이죠. 무려 단국대 가정학과 교수인 정순자 님이 저장식품의 의의와 저장방법을 체계화한 인트로는 피클 하나를 담아도 그 의의를 생각해야 하는 심도를 보여줍니다.
“저장식품은 식료품의 성수기와 먹는 시기가 다를 수도 있다는 데 그 의의와 묘미가 있다.
월별로 각 식품의 저장의 적기를 메모해 두고 저장한 식품의 응용요리를 알아 급할 때 참고하도록 하자.”
저장식품을 만드는 데 있어 “급할 때”란 과연 어느 때일까... 심히 궁금하지만 아무튼 ‘연간 식품 저장 계획’에는 다 그 의의와 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저장계획표 한 번 보고 가실까요?
#월별_식품_저장_계획표
페이지 넘어가는 표 압박 클라스.
1970년대 주부들은 아마도 이 표를 보고 마음 속으로 이런 비명을 질렀을 것 같네요.
“주부 살려~!”
아무래도 중국요리에 이어 저장식품도 집콕 때 해 먹으려고 하니, 인생 다 투자해야 할 것 같아서... 접어두어야겠습니다.
#3. 여성지 부록 앞표지면 이 정도 배우는 나와줘야지
이런저런 난관으로 집콕 때 1979년식 중국요리와 저장식품을 만들기 어려워졌으나, 이 별책부록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한국의 1세대 여성 요리연구가 라인업 만큼 화려한 표지모델 라인업 속에서 그 시절 배우들을 만나는 재미죠. 한 여성지의 (본책도 아닌) ‘부록’ 앞표지에 심지어 (제1부록도 아닌) ‘제2부록’ 앞표지까지 #영화배우 #MBC탤런트 #KBS탤런트 가 등장하는 믿기 어려운 고퀄의 부록들... 한 권 한 권 살펴보죠.
여러분, 이분 누군지 아시겠어요?
이분은 현재 “화려했던 전성기를 지나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 중인 혼자 사는 중년 여자 스타들의 동거 생활을 담은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 출연해 4차원 매력을 보여주고 계신 #김영란_배우 입니다. 현재는 주로 주인공 엄마 역으로 활동하고 계시지만, #용의_눈물 (KBS 정통대하사극 ‘용의 눈물’ 다 아시잖아요...) 에서 #신덕왕후 역할로 뛰어난 사극 연기를 보여주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 사진 출처_KBS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3> 출연자 소개란(클릭 시 이동)
“왕년엔 비교 불가 꽃미모 흩뿌리던 남심 컬렉터!
지금은 언니들 뒷목 잡게 하는 직진본능 셋째이자,
맛있는 음식 앞에선 무장해제되는 자칭 한식 대가!”
라는 소개로 유추해 보건대, 지금으로 따지면 <우먼센스> 부록 앞표지에 배우 한소희가 등장한 그런 느낌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부록’ 앞표지에도 진심이었던 1979년 여성지 에디터들의 열정...)
이 외에도 《4계의 저장식품》의 표지모델 배우 정영숙 님(<스토브리그> 백승수 단장님 어머니...)도 가끔 TV에서 뵐 수 있죠. 나머지 세 분은 사실 지금까지 활동하는 분들은 아니지만, 잠깐 조사해보면 역시 당시 셀럽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집에서 만드는 중국요리》 : 오영화 (영화배우)
위 사진 참고
-. 《알뜰가족 도시락》 : 김성희 (1977년 미스코리아 진)
ㅎㄷㄷ
-. 《집에서 만드는 서양요리》 : 최은숙 (KBS 탤런트)
헌책에서 집콕에 대해 한 수 배우고자 《집에서 만드는 중국요리》를 펼쳐보다가 멀리까지 왔네요. 그래서 오늘의 헌책이 집콕에 대해 알려주는 교훈은?
.
.
.
“집콕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글/사진 박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