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바로 선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은 왜 반복되는가. ‘다시는 오지 말라고’ 그렇게 소망해도. 유신시대 금지곡이 아직도 광장에서 불리며 감동을 주는 나라가 한국이다. 선진국에서 저항가요는 ‘라 마르세예즈’처럼 애국가 반열에 오른 것을 빼고는 다시 광장에 불려 나오는 일이 드물다. 그들은 노래에 담긴 혁명정신을 과격하게는 왕의 목을 날리는 ‘레짐 체인지’로, 온건하게는 제도개혁으로 구현해왔기 때문이다. 광장의 열망이 현실정치에서 실망으로 바뀌는 일은 왜 반복되는가?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한다. 그러나 운동장을 기울게 만든 한쪽 당사자가 바로 진보언론 종사자들 아닌가?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스페인 [엘파이스]는 모두가 진보 또는 중도좌파 신문이면서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한다. 이들의 발행부수는 [한겨레] [경향신문]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하다.
[네이버제공]도서정보 상세보기